모든 마음씀씀이가 구도의 과정 - 집과 사무실을 도량 삼아
본문
어제 초하루 법회가 오랜만에 대면법회로 열렸습니다.
한동안 도량에 못 오시다가 함께 법회를 한다고 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환하게 웃으며 많이들 오셨습니다.
방문대장 기록, 체온 측정을 하신 뒤
대웅보전, 마음강당, 반야실, 어린이법당에서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초하루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여전히 공양은 주먹밥이었지만 도량에서 법회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거득 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도량에 자주 올 수 없다 보니
집과 사무실을 도량삼아 공부하고 계실 겁니다.
며칠 전 하루 쉬는 날, 씽크대를 닦게 되었습니다.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손길이 잘 닫지 않았던 높은 곳까지
닦아내니 기분도 말끔해지고 손잡이가 반질반질 윤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한 단순반복인 집안일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 결엔가 마음에 도반들이 자리합니다.
‘그 도반이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일이 잘 해결되게 해.’
‘공부길에서 물러섬이 없게 해.’
묵은 때를 닦아내면서,
오래 찌든 얼룩을 지워내면서,
도반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그들에 대해 마음을 내고 있노라니
문득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났습니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본다던 시인.
별 하나에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별 하나에 가난한 이웃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던 시인의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어깨가 아프도록, 손가락 관절이 아프도록
여기저기 닦고 또 닦았던 오후 내내
내 마음에 다녀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별이 되어 마음에서 빛을 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한 도반 떠올랐어요.
그 도반은 얼마 전 씽크대를 새 걸로 교체했어요.
“나는 새 씽크대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좋겠다.
새 씽크대 설치 완료하면 사진 찍어 공유해 줘. 같이 기분 좋게.”
그 도반은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사진을 찍어 보내왔습니다.
새 씽크대 앞에서 설거지할 때마다 행복하라고 축원의 말을 건네었는데
사실, 그 도반의 새 씽크대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었습니다.
씽크대 배관이 역류해서 집안이 물바다가 되었고 주방 바닥과 씽크대가 물을 먹어
온 집안이 먼지에 뒤덮여 가며 대공사를 벌인 결과물이었거든요.
그렇게 얻어진 새 씽크대라 한편 그 모든 번거로움만 생각한다면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세상에 다 나쁜 일은 없습니다.
온통 나쁜 일인 듯 모습을 드러낸 일일지라도
그 안에는 얼마든지 좋은 일이 내포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난리를 겪어 내었기에 새 씽크대가 생겼고
그 씽크대 앞에서 행복하길 마음낼 수 있었듯 말입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새 씽크대 부러울 것 없고
도반들 한 사람 한사람을 별처럼 떠올리고 또 마음 내면서
반질 반질 닦아낸 나의 오래되고 낡은 씽크대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씽크대라는 것을요.
여러 신도님들의 하루 하루는 어떠하신지요?
도량에 자주 오시지 못하니
“모든 마음씀씀이가 구도의 과정이다”라고 하셨던
큰스님의 말씀이 더욱 엄중하게 다가오는 시절을 살게 되었습니다.
청소를 하든, 사무실에서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바로 내 앞의 사람에게 쓰는 그 모든 마음들
그 모든 마음씀씀이 하나 하나가 구도의 과정이 되도록
근본에서 들이고 낼 수 있도록 관해야겠습니다.
‘주인공! 우리의 모든 마음 씀씀이가 구도의 과정임을 잊지 않고
일상의 크고 작은 일에서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쓰면서 살게 해.’
다가오는 25일 금요법회,
27일 정기법회는 도량에서 대면법회로 열릴 예정이니
그날 반갑게 뵈어요.^^
- 이전글고3 수학능력시헙 응원 찹쌀떡 공양 20.11.19
- 다음글근본과 꼭 들어맞는 순간들 - 부산지원의 오늘 2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