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옥 보살님 -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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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명의 마지막 순간 지킨 그녀 "종착역에 남는 건 사랑뿐이더군요"
부산=원선우 기자
부산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 유애옥씨
7년 전 위암 진단받고 위·비장·쓸개·췌장 잘라내… 그때 속 비우면서 마음도
비워
평생을 앙숙처럼 산 부부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남매
돈 때문에 원수 됐던 자매… "사랑" 한 마디에 마지막 화해
지난 10월 말
부산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호스피스 병동. 연분홍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은 유애옥(54)씨가 병상에 누운 담낭암 말기 환자
김하영(가명·65)씨에게 다가갔다. "어머님,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애벌레라면, 죽음 이후에는 나비가 되는 거예요. 나비처럼 더욱
아름다워져요. 그 모습 생각해보세요."
30분 동안 유씨는 김씨의 앙상한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고마워요. 선생님….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김씨가 희미하게 웃었다. 유씨가 일주일 뒤 호스피스 병동을 다시 찾았을 때 김씨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또
하나의 생명이 그렇게 숨을 거뒀다. 유씨가 보낸 350번째 생명이었다.
"생전 그리 아등바등하면서 살아도 죽을 때 자기 몸뚱이 하나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유씨는 지난 2005년 위암 진단을 받고 위·비장·쓸개·췌장을 잘라냈다. "사람들은 다
제가 죽을 거라고 했어요." 위를 모두 잘라내 소화가 더딘 탓에 밥 한 숟가락을 먹는 데 30분이 걸렸다.
10년 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호스피스 병동 봉사에 몰두하게 된 건 이때 이후다. "이거 다 잘라내고도 살아 있으니까, 사실 덤으로 얻은 목숨이죠. 더 많은
사람에게 힘이 돼주라고 하늘이 살려준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을 '속 빈 여자'라 불렀다. 장기가 없어져 속이 비었지만, 마음도 비웠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 병동에 들어온 담관암 말기 김숙자(가명·58)씨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2주 동안의 호스피스 병동 입원기간 내내 남편은
병상의 아내를 단 두 번 찾았다. 김씨가 숨을 거두던 날의 일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김씨의 임종을 지켜보러 찾아왔다. 자녀가 어머니 뺨에 입을
맞추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동안 60대 남편은 등을 돌린 채 돌아보지 않았다.
지켜보던 유씨가 남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 사모님께 한마디만 해주세요. '사랑했다' '고마웠다'고요." 한사코 거부하던 남편이 김씨를 향해 "사랑했소"라고 했다. 말을 마친 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몇 분간 말없이 쳐다봤다. "내가 미안하오. 잘못했소…." 남편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호스피스 병동은 남편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2004년 대장암 말기로 입원했던 한영애(가명·40)씨는 큰아들이 일곱 살 때 이혼하고, 두 남매를 의붓어머니에게
맡겼다. 임종을 앞두고 아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내가 무슨 면목으로 애들을 보겠느냐"며 망설이던 그였다. "어머니, 하나도 안 늦었어요. 계속
전화하세요.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하세요." 열 번 통화 끝에 아들과 딸은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사랑했어. 엄마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사랑할 거야." 아이들은 10년 만에 만난 친엄마의 임종을 지켰다. 마지막 선물로 은목걸이를 목에 걸어줬고, 한씨의 이마와 볼에
입을 맞췄다.
평생 번 돈을 동생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언니는 "죽을 때까지 동생을 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많은 돈,
한 푼도 못 가져간다"는 유씨의 설득에 동생을 용서했다. 수년 만에 재회한 자매는 "사랑해"라는 말만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남는 건 사랑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유씨는 매주 서너 번씩 금정산을
오른다. 체력도 보강하고, 자신의 '기부통장'을 채우기 위해서다. "산에 버려진 빈 병을 주워다 내다 판 돈으로 1년에 50만원씩 모았어요."
암 진단을 받고 "이제 더는 봉사를 못하게 됐으니 돈이라도 남기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은 돈이 어느새 320만원을 넘었다. 매년 50만원을
부산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기부하기도 한다. "'기부통장'의 돈은 죽을 때까지 계속 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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